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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기무라 타쿠야를 안 좋아하는 사람도 좀 있기는 한데 아무튼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 중의 한 명인 거는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아무튼 이 사람이 요즘 화제가 된 거는 코로나가 슬슬 일상화 되면서 3년 만에 열린 오다 노부나가 마츠리 때문이다.

이 마츠리는 오다 노부나가의 기마무사 행렬을 재연하는 행사인데, 오다 노부나가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매년 공모해서 고른다고 한다.

근데, 이번에 기무라 타쿠야가 오다 노부나가 역할을 맡아 행렬을 진행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도에이(도에이 애니메이션의 그 도에이 맞음)가 70주년 기념 작품으로 만든 THE LEGEND & BUTTERFLY 라는 작품의 공개(2023년 1월 27일 상영 시작)를 맞아서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키무라 타쿠야가 오다 노부나가 역할을 맡고 있어서 이번 마츠리로 홍보를 제대로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기는 하다.

아무튼, 이 노부나가 행렬은 11월 6일(일요일)에 진행하는데, 1시간 정도 한다고 한다.

코로나 방역 대책 때문에 아무나 다 갈수는 없고, 15000명을 추첨해서 선정한다고 하는데, 10월 15일 부근을 기점으로 60만명이 응모해서 40대 1의 경쟁률이라고 한다. 신청은 10월 20일까지였는데, 나는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떨어졌다는 메일도 온다.

아무튼, 기무라 타쿠야, 아직 인기가 그렇게 죽지는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행렬을 하는 주변 도로도 싹 다 통제해서 행렬로에 있는 가게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면 못 보는 수준이라서 아쉽기는 하다. 웬만하면 15000명 안에 들어서 티켓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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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키가하라에 이어서 기후현 여행을 계속했다. 기후성도 가보기로 했는데, 기후성은 오다 노부나가가 거점으로 잡기도 한 곳이었다.

사실 오다 노부나가가 점령하기 전에는 사이토(齋藤) 가문에서 갖고 있던 영지였는데, 오다 노부나가가 침범하여 빼앗았었다.

기후역에 도착하면 오다 노부나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금색으로 되어 있는데 오른손에 잡고 있는 건 칼이 아니라 조총이다. 당시에 오다 노부나가가 적극적으로 해외 문물을 받아들였고 상업도 장려했었는데

물론 당연히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런 적극적 개방 정책으로 조총도 빨리 받아들였다.

그 조총을 활용해서 당대 일본 내에서 최강의 기병부대라고 불리는 다케다 신겐의 부대(물론 싸울 땐 그 아들이랑 싸움)를 물리쳤다.

그런 걸 생각해서 오다 노부나가에게 조총을 쥐어준 것으로 보인다.

기후역에서 버스를 타도 갈 수는 있기는 한데 난 역시 걸어갔다. 한 기후역에서 기후성으로 가는 산 입구까지는 3~4키로 떨어져 있는 거 같다.

산에 올라가는 길에 큰 절 같은 게 하나 있었다.

선광사라고 쓰여있었다. 일본어로 읽으면 젠코우지라고 해야하나? 찾아보진 않았음.

산의 거의 입구 근처까지 오니까 사이토 가문의 집으로 보이는 곳도 있었다.

사이토 도산이라는 사람이 사이토 가문에서 유명하다.

기후성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솔직히 알아보진 않고 그냥 왔다.

평소에 운동을 거의 안해서 올라가는 건 힘들고 마스크를 꼈다 벗었다 하느라 힘들기도 하고 중간에 쉴 때도 있었지만, 걷는 거 자체는 빠르게 가서 한 40분 정도 걸렸던 거 같다.

산에서 중간에 사람들을 만나면 こんにちは하고 인사를 하는데 해주면 답은 하는데 이걸 꼭 해야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후성에 거의 코앞에 가까운 지점에 전망대가 있다. 기후시내가 다 보이는 수준인 거 같다.

스타디움 같은 것도 잘 보인다. 근데 비가 아주 조금씩 왔다가 그쳤다가해서 약간 불안했었다.

더 가면 기후성의 입구로 들어갈 수 있다.

기후성이 살짝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기후성은 그렇게 큰 성은 아니다. 산 속 깊은 곳에 있어서 크게 지을수도 없고 그래서 많은 인원이 들어갈 수도 없다.

또한, 많은 식량을 둘 수도 없고, 성에서 지켜려고 해도 물길을 끊어버리고 극단적이게는 불을 질러버리면 방어가 안돼서 딱히 방어용 성은 아니었다.

기후성에 가니까 또 갑자기 날이 개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사이토 가문이 지배하던 기후성(당시는 이나바야마성)을 점령한다. 점령하는 과정에서 사이토 가문 내부 배신자를 이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오다 노부나가가 죽을 때 반란을 일으킨 아케치 미쓰히데가 사이토 가문에 있다가 오다 노부나가 밑으로 들어온 인물이었다. 자기가 한대로 당하는 역사의 역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성은 200엔 입장료가 들었다. 다른 성보다는 입장료가 싼 편이다. 로프웨이(케이블카)가 있는데 이게 돈이 700엔인가 드는 것 같다. 또 안에 들어가보니 성 안이 좁아서 싼 가격일만도 했다고 본다.

기후성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한 것도 있다. 공자와 관련된 것에서 한 글자를 따오고 나머지는 또 다른 쪽에서 따와서 기후(岐阜)가 됐다고 봤던 기억이 난다.

오다 노부나가가 개방을 하면서 주로 포르투갈, 조금 이후에는 네덜란드와 주로 교류를 했는데 포르투갈의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가 일본에 오래 머무르면서 기록을 많이 남기기도 했다.

아래를 내다보는 풍경이 괜찮았다.

당시에 지구본도 있고 안경도 있었던 거 같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을 때에는 당시 거의 2인자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서쪽(지금 히로시마, 기타큐슈 쪽)의 모리 가문을 공격하러 갔었다.

그런데, 모리 가문이 꽤 강해서 히데요시가 구원병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내고 오다 노부나가는 구원병을 보내기로 하고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에게 1만명 정도의 구원병을 준다.

구원병을 인수받은 아케치 미쓰히데는 어쩐 일인지 교토에 있는 혼노지로 가서 병사들에게 적은 혼노지에 있다고 말하고 반란을 일으킨다.

이미 여기까지 온 상황이고 명령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그대로 병사들이 반란을 일으켰고 오다 노부나가는 당시 100명 정도 호위병 밖에 없어서 분전했지만 결국 죽게 된다.

여의치 않자 절에 불을 질렀다고 한다. 미스터리로 이야기 되는 게 시체를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근데 뭐 불 질렀으니까 타서 없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시체를 못 찾은 거랑 일본의 역사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처럼 이건 딱 믿고 가는 기록이다 할 만한 게 거의 없고 각종 설화(오다 노부나가가 살아서 탈출했다 이런 이야기)가 많아서 별의 별 얘기도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아케치 미쓰히데가 오다 노부나가를 예수회의 꼭두각시로 보고 죽였다는 이야기도 나돈다고 한다. 당시 오다 노부나가는 불교의 폐단을 억제하려고 크리스트교 등도 정치에 개입만 안하면 포교할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죽었을 때 옆에 있던 호위병 중에 야수케라는 흑인 사무라이가 있었다고 하는데 야수케는 생포당했으나 아케치 미쓰히데는 야수케를 보고 너 같은 미물이 뭘 알겠냐면서 그냥 풀어줬다고 한다.

흑인도 능력이 있으면 등용한 오다 노부나가랑은 완전 다른 모습이다. 그 점에서 오다 노부나가가 시대는 예전이었지만 자유주의에 가까웠다고 난 생각한다.

그 뒤에 아케치 미쓰히데는 오다 노부나가의 장자 노부타다도 죽였으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또 이걸 놓치지 않았다.

교토에서 사자가 와서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다는 사실을 히데요시에게 알려주는데 히데요시는 그 사자에게 그 사실을 누가 알고 있냐고 물어봤고, 자기만 안다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사자를 죽여버렸다.

자기만 이 정보를 알게 딱 틀어막고, 상대중인 모리 가문에게는 우리가 마음먹고 들어가면 너네는 그냥 끝낼 수 있는데 성주가 할복하면 봐줄게 하고 서신을 보낸다.

오다 노부나가가 죽었는 줄 모르는 모리 가문은 그 정도면 땡큐하면서 성주가 할복하고 히데요시 군은 성주가 죽는 걸 보고 빠르게 교토로 돌아가서 우유부단하게 헤매던 아케치 미쓰히데 군대를 제압한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패배해서 도망치다가 농민들의 손에 죽었다고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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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내가 선택한 여행지는 나고야였다.

사실 이 기간이 하루 공휴일이 있었고, 하루 휴가를 내서 4일 연휴여서 큰 맘 먹고 교토까지 가서 단풍이나 볼까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 있어서 애매한 상황이라서 그냥 나고야만 갔다가 오기로 했다.

당연히 야간버스로 나고야에 갔는데 새벽에 일찍 오니까 딱히 할 게 없었고

원래부터 가기로 했지만 아침 시간을 이동시간으로 활용해서 세키가하라에 갔다.

세키가하라는 일본 전국시대의 사실상 마지막 전투인 세키가하라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임진왜란 이후에 빈 권력을 두고 히데요시 다음으로 세력이 강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세력, 주로 이시다 미츠나리를 중심으로 모인 서군이 맞붙은 전투다.

산이 약간 주황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근데 다 물드는 건 아니고 드문드문 물이 들었다. 나무가 다른 나무인 건가...

아무튼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었던 곳은 대강 보존되어 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심의 동군은 사실 서군에 비해서는 숫자도 작은 편이었고 진영이 위치도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야스 아들인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이끄는 3만 8000정도의 군대가 사나다 마사유키가 있는 우에다 성을 공격하고 뒤에 동군에 합류하기로 했는데 오래버티면서 제 때에 오지 못했다.

그렇지만 서군은 누구 하나를 중심으로 단합된 군대가 아니었고 공통의 목표같은 것도 부족했다.

사실상 서군의 대장인 이시다 미츠나리는 임진왜란에도 참전했었는데 전투 역량이 뛰어나진 않았고, 행정 관련 능력은 있어서 나름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괜찮게 봤다고 한다.

하지만, 세력을 모으는 게 가장 중요한 동-서군 전쟁에서는 불리했다. 다른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자신의 의도대로 행동하게 하는 친화력, 인술 같은 건 부족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군 쪽 동맹군 일부는 전투 시작 후에 도시락을 먹어야 된다거나 도와달라고 보낸 사자가 말에서 내리지 않았다고 별 핑계를 다 대면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마쓰오 산에 코바야카와 히데아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겉으로는 서군에 들어온 것처럼 했지만, 뒤에서 이미 동군이랑 내통하고 있었다.

사실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어느 쪽에 들어오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릴 정도였는데 망설이면서 결정을 못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 지시로 동군이 고바야카와 히데아키가 있는 마쓰오 산에 대포를 쐈다고 한다. 이걸로 깜짝 놀란 히데아키가 결국 동군으로 들어와서 같이 싸웠고

서군이지만 자기 군대가 피해를 볼까봐 혹은 동군이 이길까봐해서 진군하지 않는 쪽도 있어서 전투 결과는 싱겁게 끝났다.

붉은 단풍이 강하게 물들었다.

420년 전(정확히 1600년에 전투가 벌어짐)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곳인데 이렇게 조용하고 고요할 수가 없다. 세상 일이라는 게 참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외국인이 여기 와서 이런 걸 느끼고 가는 것도 특이한 경험 같았다.

사실, 여기에 오면 혹시라도 이 풍경을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세키가하라 전투가 있던 지역 바로 앞에 이렇게 문이랑 해바라기를 꾸며놓은 곳이 있는데 11월에 가니까 당연히 해바라기는 없을 거 같았는데 문도 없더라.

아쉬웠다. KBS드라마스페셜 희수가 생각 나기도 하는 풍경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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